한전은 왜 삼성·SK에 전기요금 25조를 미리 내 달라고 했나
답은 ‘빚 한도’입니다. 2027년 말 줄어드는 한도를 넘지 않으려던 한전, 큰돈을 미리 내기 싫었던 삼성·SK, 그리고 그사이 한전 주가까지 차례로 봅니다.
7월 9일, 한국전력(한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제안서를 보냈다고 보도됐습니다. 앞으로 5년 치 전기요금을 미리 내 달라는 내용이었고, 금액은 두 회사를 합쳐 25조 원이었습니다.
요금을 미리 내는 것(선납)을 부탁하며 내세운 명분은 전력망을 지을 돈이었습니다. 하지만 처음 보도될 때부터 또 하나의 배경이 함께 거론됐고, 10월 12일 국정감사에서는 한전 부사장이 그것을 이유로 직접 들었다고 전해졌습니다. 2027년 말이 지나면 한전이 빚을 낼 수 있는 한도가 크게 줄어든다는 것입니다.
두 회사의 답은 ‘아니요’였습니다. 한전은 국회의원실에 두 회사가 내부 검토 끝에 참여가 어렵다고 답해 왔다고 밝혔습니다.
전기를 파는 회사가 왜 돈을 빌리지 않고 손님에게 요금을 먼저 달라고 했을까요?
한전은 빚도 마음대로 못 낸다
한전은 발전소와 송전선을 짓는 돈의 상당 부분을 빌려서 마련합니다. 돈을 빌리려고 찍는 채권(한전채)을 쓰는데, 법(한국전력공사법)이 여기에 한도를 둡니다. 회사의 밑천, 곧 자본금과 그동안 쌓은 이익을 합친 금액의 2배까지만 빌릴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가진 돈의 2배까지만 빌려준다’는 대출 한도입니다. 한전은 2021~2023년 큰 적자로 쌓아 둔 이익이 약 3분의 1로 줄자(제 계산), 2022년 말 법을 고쳐 한도를 잠시 5배로 늘려 받았습니다. 이 특별 한도(특례)가 2027년 12월 31일에 끝납니다. 단순하게 옮긴 비유입니다.
국회예산정책처 계산으로 한전의 빚은 한때 밑천의 4.5배까지 갔다가 2025년 말 3.0배로 내려왔습니다. 문제는 한도가 다시 2배로 돌아가는 2028년입니다. 한전 계획대로 가도 그해 빚은 밑천의 2.3배로 한도를 넘습니다.
그림 2의 숫자(표)
| 해 | 빚 배수 | 그해 한도 | 구분 |
|---|---|---|---|
| 2021 | 0.8배 | 2배 | 실적 |
| 2022 | 3.4배 | 5배 | 실적 |
| 2023 | 4.5배 | 5배 | 실적 |
| 2024 | 4.2배 | 5배 | 실적 |
| 2025 | 3.0배 | 5배 | 실적 |
| 2026 | 3.0배 | 5배 | 전망 |
| 2027 | 2.7배 | 5배 | 전망 |
| 2028 | 2.3배 | 2배 | 전망 |
| 2029 | 2.1배 | 2배 | 전망 |
빚 배수 = 한전채 잔액 ÷ (자본금 + 적립금). 한전 본체(별도) 기준입니다.
그럼 2027년 말, 빚은 한도를 얼마나 넘을까요?
넘치는 몫 약 19조 원, 그래서 25조
9월 29일 국회예산정책처가 낸 보고서 한 권에 답이 있습니다. 2027년 말 한전채는 약 76조 원으로 예상되는데, 그때 2배 한도는 약 57조 원입니다. 약 19조 원이 넘칩니다.
그림 3의 숫자(표)
| 항목 | 금액 | 근거 |
|---|---|---|
| 2027년 말 자본금+적립금 전망 | 28조 4,177억 원 | 국회예산정책처 |
| 2배 한도 | 56조 8,354억 원 | 국회예산정책처 |
| 한전채 잔액 전망 | 76조 489억 원 | 국회예산정책처(한전 계획) |
| 한도를 넘는 몫 | 19조 2,135억 원 | 국회예산정책처 |
| 잔액 − 선납 25조 원(가정) | 51조 489억 원 | 제 계산 |
국정감사에서 한전 부사장은 20조 원 이상을 선납받으면 한도를 넘지 않을 수 있어 제안했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보도됐습니다. 넘치는 몫과 거의 같은 크기입니다. 받은 만큼 한전채를 덜 찍는다고 가정하면, 25조 원을 다 받았을 때 2027년 말 한전채는 약 51조 원으로 한도 안에 들어옵니다(제 계산 — 가정).
국정감사에서는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전력망 때문 아니냐는 질문도 나왔습니다. 사장은 그 사업 1단계가 약 1조 4,000억 원 규모이고 한전 몫은 20%가 안 된다며, 25조 원 전체가 그 사업에 들어갈 돈은 아니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해졌습니다.
한전에겐 숫자가 딱 맞는 방법이었는데, 삼성·SK는 왜 거절했을까요?
삼성·SK는 왜 거절했을까
9월 9일, 삼성전자 부사장급 임원이 한전에 말로 거절 뜻을 전했고 SK하이닉스도 비슷한 때 뜻을 전했다고 보도됐습니다. 한전이 내건 조건은 이랬습니다. 미리 낸 돈에 국채보다 높은 이자를 쳐 주되, 현금 대신 반기마다 전기요금에서 깎아 주는 방식입니다. 사장은 국정감사에서 그 이자가 한전채 이자보다는 낮다고 설명했다고 보도됐습니다.
한전은 싸게 빌리고, 두 회사는 국채보다 나은 이자를 받는 대신 큰돈을 5년 치 요금으로 미리 내는 셈입니다(제 해석). 두 회사 모두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보도됐습니다.
국정감사에서 한전 사장은 반도체 산업의 불확실성과 큰돈이 한꺼번에 나가는 부담 때문으로 안다는 취지로 답했다고 전해졌고, 언론은 반도체 호황이 5년 내내 이어진다고 장담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풀이했습니다.
그사이 한전 주가는 어땠을까요? 이 소식에 흔들렸을까요?
주가는 이 소식에 흔들렸을까
숫자로 보면, 한전 주가의 큰 하락은 이 소식보다 먼저 일어났습니다. 1월 고점부터 10월 13일까지 내린 폭의 약 90%가 선납 제안이 처음 알려지기 전에 이미 내린 몫입니다(제 계산).
한전 주가는 2025년 한 해 약 2.4배로 올라 올해 1월 가장 높았습니다. 그런데 선납 소식이 처음 나오기 전날(9월 1일)에 이미 고점보다 52% 낮았고, 보도 뒤 10월 13일까지는 약 10% 더 내렸습니다(제 계산).
주가는 실적과 금리, 요금 정책이 한데 얽혀 움직이니 무엇 때문에 내렸는지는 가리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전이 2027년 말 한도를 어떤 길로 맞추느냐는 한전의 돈 사정과 바로 이어지니, 주가를 보는 분이라면 지켜볼 만합니다(제 해석).
주가는 네이버 금융 일별 종가입니다. 본문에 숫자로 적은 날의 종가는 한국거래소 공식 시세와 같은지 확인했습니다. 흐름을 보려는 것이고 투자 판단의 근거가 아닙니다.
그럼 선납이 막힌 지금, 남은 길은 무엇일까요?
남은 길은 요금, 나라 돈, 법
국정감사장에서 한전 사장은 결국 전기요금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한도가 2배로 줄면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하다고 했고, 필요하면 나라 돈(재정)을 넣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고 보도됐습니다.
444일특례가 끝나는 2027년 12월 31일까지 남은 날(10월 13일 기준)
- 전기요금 인상사장: 한도가 2배로 줄면 “최소한의 전기요금 인상이 필요”10월 12일 국정감사 보도
- 나라 돈(재정) 투입사장: 필요하면 부채 비율을 낮출 재정 투입도10월 12일 국정감사 보도
- 법 고치기한전: 2030년 말까지 배수 2배 이내 목표, 한전법 개정 정부 협의 추진국회예산정책처 보고서
국회예산정책처의 계산 한전 계획대로라도 2029년 배수 2.1배, 2배를 못 맞춥니다.
한전은 2030년 말까지 빚을 밑천의 2배 안으로 낮추는 목표와 함께, 한전법 개정을 정부와 협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한전 계획대로라도 2029년까지 2배를 못 맞춘다고 계산했습니다. 요금, 나라 돈, 법 가운데 무엇이 언제 움직일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직 모르는 것
-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직접 밝힌 거절 이유
- 전기요금을 올릴지, 올린다면 얼마나
- 한전법을 고칠지(특례 연장이나 한도 조정), 한다면 언제
한 줄로 정리하면 한전 부사장이 국정감사에서 든 이유는 2027년 말 줄어드는 빚 한도였고(국회예산정책처 계산으로 넘치는 몫 약 19조 원), 두 회사는 거절했으며, 한전 주가는 이 소식 전에 이미 대부분 내려 있었습니다(제 계산). 다음에 볼 날짜는 5배 특례가 끝나는 2027년 12월 31일입니다(10월 13일 기준 444일 남음).
용어 풀이
- 선납: 요금을 미리 냄.
- 한전채: 한전이 돈을 빌리려고 찍는 채권. 법에서는 ‘사채’라고 부릅니다.
- 밑천: 이 글에서는 한전의 자본금과 그동안 쌓은 이익(적립금)을 합친 것. 법이 빚 한도를 정하는 기준입니다.
- 특례: 법으로 잠시 늘려 둔 예외. 한전채 5배 특례는 2027년 12월 31일에 끝납니다.